2주 차이를 두고 나란히 사표를 낸 친구와 퇴사 후 가장 고치고 싶은 각자의 모습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두서 없이 자신의 불만족스러운 점들을 나열하다 서로를 동시에 가로 지른 부분은 버석해진 감정에 관한 것이었다. 대단히 감동적인 일도 없고, 무척이나 즐거운 일도 없고, 남들이 미치게 슬프다는 영화를 봐도 눈물은 커녕 콧등도 시큰거리지 않는 일종의 감정의 무중력 상태(라고 나는 부른다.)에 우리는 공감했다. 

먹고 사는 일에 몇 년을 치이고 온갖 관계와 시간을 견디다보니 그 사이 우리의 기분이란 것은 스스로에게 일종의 사치가 되어버렸다. 기쁘고 슬픈 일은 웃고 울어야 할 일이 아니라 타인의 눈 밖에 날까 애써 숨겨야 하고, 되짚어 봤자 당장 내일 해야 할 일에 방해가 되는 불필요한 무언가가 되버리고 말았다. 이도저도 갈 곳 없는, 그러나 알아차리지 못한 사이 일어나버린 우리의 감정은 지구 밖 버려진 인공 위성처럼 빛도, 소리도 없는 곳에 흘러 들어가 버렸다. 

갈피 잃은 크고 작은 마음들은, 다시금 끌어다 내 앞에 놓고 싶지만 중력 밖을 벗어난 것처럼 이내 뜻대로 돌아와지지가 않는다. 


그 시간을 모두 후회하는 것은 아니다. 한동안 우리는 각자가 선택한 일을 위해 바쁘지만 보람을 느끼며 살았고, 그런 삶은 또다른 세계관을 가져다 주었다. 어느 쪽으로는 분명 성장했고, 시야는 넓어졌고, 어쨌든 무언가를 더 얻었다.

다만 아쉬운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놓치지 말았어야 할 우리의 마음이 있었다는 걸 좀 더 일찍 알아 차렸어야 했고, 그것을 표현할 용기가 필요 했다는 것 이었다. 언제고 감정은 일었고, 우린 그것들에 조금만 더 귀를 기울였어야 했다. 즐거우면 웃고 떠들고, 화가 났으면 이유를 찾아 나를 다독이고, 우울감이 찾아왔을 때 충분히 쉬어야만 했던 바람 아닌 구체적 행위가 필요했다. 너무 멀리 가지 않게.


인생은 마라톤과 같다는 말, 이 상투적인 관용구가 의미하는 바가 단순히 인생 기니, 멀리 보고  천천히 뛰라는 것만이 아니라는 것임을 이제는 이해한다. 중요한 건 내 앞에 놓인 레이스는 나만 달릴 수 있다는 것이다. 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거리와 속도, 놓인 장애물보다 신경 써야할 것은 그 길에 있는 '나'라는 존재라는 것. 무엇도, 아무것도 상관 없이 내 숨소리에 맞춰, 내 발걸음에 맞춰, 나 스스로를 끊임 없이 살피며 가야 기어코 그 길을, 완주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속도는 너무 빨랐고, 가진 것에 비해 자만했고, 무모하리 만큼 타인만을 의식했다. 그래서 결국 페이스를 잃고, 모르는 사이 우리의 마음도 잃었다.


언젠가 친구와 나는 다시 같은 시간에, 길에 놓일 것이다. 30년 넘게 이런 모습으로 살아왔는데, 사람이 어디 쉽게 변할까하는 불안함에 우리의 대화가, 웃음이 흔들렸지만 혼자 안되면 뛰는 등 뒤로 손이라도 슬며시 내어주기로, 네가 보지 못하면 내가 보고 있다는 말 한마디라도 던져주기로, 열 두살 애같은 다짐들로 우리는 그 시간을 마무리했다. 아마도 그래야만 이 빈 시간을 견뎌낼 수 있으리라, 동의했던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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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7월

2017.07.02 17:47 from 이야기들


다정이 필요하면 누군가의 취향을 엿볼 수 있는 공간으로 간다. 연희동으로 이사한 유어마인드에 갔다. 

이곳저곳 닿은 손길이 많이 느껴지는 곳은 일종의 '안도감'을 준다. 창은 이것을 위해 만들었고, 서가의 색은 내가 좋아해서, 벽에 붙인 그림은 이런 느낌이어서 그랬어라고 말하는 것 같은 느낌들. 제각각의 이유 있음에서 느껴지는 친절함, 그런 것들로 부터 다정을 얻는다. 


헤어짐이 유독 많은 한주였다. 다섯해를 함께 보낸 동료의 송별회를 했고, 멀리 가게 될 친구를 배웅했고, 이미 떠난 누군가의 안부를 묻기도 했다. 물리적으로든 심리적으로든 곁에 사람이 나고 드는 일은 이만하면 익숙해졌겠지 싶다가도 막상 겪으면 여전히, 또 그렇게 어렵다. 온종일 서운해하는 내게 너와 관련한 모든 일을 그저 소음처럼 여겨주라고 당부하던 친구가 자꾸만 밟힌다.


비가 많이 내린다. 비가 내리는 주말을 얼마나 바랐던가. 

책방 아래 찻집에서 사온 수채화라는 이름을 가진 차를 마시며 친구에게 줄 선물을 포장했다.  



이 계절을 싫어했던 때가 대부분이었는데, 묵직하고 습한 공기가 제법 견딜만 해졌다. 기쁨이 많고 사소한 것에도 마음을 두는 일이 잦았던 너를 며칠 간 떠올리다 보니 내게도 그만한 힘이 주어졌나보다.


프라하로 가는 차편과 숙소를 예약했다. 가고싶었지만 그저 막연했던 곳이라 아직도 계획이 머리에 서지 않는다. 초가을쯤 되었을 때이니, 숙소 근처 작은 언덕에 올라 이는 바람을 욕심껏 맞을 수 있으면 좋겠다. 

상상이 아니고서는 지금을 버티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견디는 것은 아직 (사람 아닌)시간에게만 해당 되는 것인가보다. 


왜 나는 당신 얼굴을 쓰다듬으며 살지 못했을까 

얼굴이 사라지기 전에 

곱고 천진하게 패배하기는 얼마나 어려운가

뒤척일 수 있을 때

가라앉고 싶다_박연준, 「네가 사라지기 전에」, 『베누스 푸디카』


-


일요일의 마무리는 역시나 Fred Hersch

https://youtu.be/jL9zmiz3Gl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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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자 이모

2017.06.18 20:17 from 이야기들


마음이 지치면, 자연스레 작은 것들에 눈을 돌리게 된다. 이를테면 식물, 요리, 몸을 쓰는 모든 행위들. 엄마와 친구들이 왜 계절이 바뀔 때마다 꽃 사진을 찍고, 단풍을 보러 가는지, 이모는 어째서 (그 어렵다는) 난 키우기에 자꾸만 도전하는지 이제는 대강이나마 짐작이 간다. 가장 쉽게 집중할 수 있고 노력으로 통제 가능한 것들에서 얻을 수 있는 성취감, 그런것들로 부터 안도감과 기쁨을 느낀다. 



몇 안되는 화분들에 물을 주고, 바람을 쐬어 주었다. 사람처럼 식물들도 바람(통풍)이 중요하다는 것을 왜 이제야 알았을까. 


계간지 여름호를 순자 이모에게 보내드렸다. 


혼자 책을 쥐고 읽을 수 있게된 무렵부터 이모는 내게 책을 보내주었다. 당신에게 먼 친척도 되지 않는 나에게 왜 그리 하셨는지는 아직도 잘 모를 일이지만, 덕분에 나는 책이 아니었으면 관심을 두지 않았을 것들에 대해 눈을 돌릴 수 있었고 글을 만지는 밥벌이를 택할 수도 있었다. 


언젠가의 이모처럼 계절과 계절사이가 오면 그간 모아둔 책을, 이제는 내가 보내드리고는 한다. 고맙다는 인사는 때마다 문자로 남기신다. 


"몸이 안좋아 계속 병원 신세를 졌다. 힘들고 지쳐서 집에 왔을 때 네가 보내준 책은 청량제 역할을 해주었다. 지난번에 보내준 책도 잠못 이루는 밤에 소중하게 한 자 한 자 읽었다. 너를 생각하면 푸른밭에 펼쳐진 도라지 꽃이 생각난다. 하늘거리고 청명한. 그리고 순백한 도라지 꽃. 너를 그리워하는 것도 나에게는 즐거움이다."


나를 위한 작은 것들이 아닌, 당신을 위한 작은 것들에 나도 눈을 돌릴 수 있을까. 언제고 때가 되면 살펴야하는 일을, 그렇지만 (기쁨이나 보람 따위를 느낄) 기약 없는 일을 행하려고 하는 '때'라는 것이 올까. 


다음 여행에선, 순자 이모를 위한 사진을 찍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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